우리가 사는 세계는 진짜일까?
어느 날 문득, 나는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내 삶이 마치 미리 정해진 대본을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혹시 나는 단순한 조연, 혹은 비주얼 노벨이나 게임 속에서 배경을 채우는 NPC(Non-Player Character)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철학과 과학에서 논의되어 온 깊은 주제다.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인지, 아니면 어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은 인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과연 우리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거대한 게임 속 NPC처럼 특정한 규칙 안에서만 작동하는 존재일까?
1. NPC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1.1 익숙한 일상의 반복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우리 삶은 때때로 게임 속 NPC의 대사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자동 응답하는 것처럼 우리는 정해진 행동을 반복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직장에서 정해진 루틴을 수행하고, 마트에서 비슷한 물건을 고르는 우리의 모습은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
1.2 이유 없이 자동으로 반응할 때
길을 걷다가 누군가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나는 반사적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한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응하는 이 행동은 마치 게임 속에서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정해진 대사가 출력되는 NPC와 비슷하다. 나의 대답은 내 의지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프로그래밍의 결과일까?
1.3 삶이 미리 정해진 것처럼 느껴질 때
때때로 우리는 “이 순간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아”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데자뷔(Deja Vu)라는 이 현상은 마치 게임 속에서 동일한 이벤트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한, 가끔은 특정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내 삶에 등장하거나, 예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 마치 시나리오에 의해 미리 계획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2. 철학적으로 본 ‘나는 NPC인가?’
2.1 시뮬레이션 이론: 우리가 게임 속에 살고 있다?
철학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우리가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만든 시뮬레이션 속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의 ‘시뮬레이션 가설’에 따르면, 충분히 발전한 문명은 과거의 인간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으며, 우리도 그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플레이어’가 아닌, 시뮬레이션 속의 NPC일지도 모른다.
2.2 결정론: 우리의 선택은 자유로운가?
NPC의 가장 큰 특징은 정해진 행동 패턴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일까? 물리학과 신경과학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이전의 조건과 뇌의 화학적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만약 우리의 선택이 단순한 화학 반응의 결과라면, 우리는 게임 속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NPC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2.3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동굴 속 인간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단순한 그림자에 불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굴 속에서 평생 그림자만을 본 사람들이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듯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도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제한된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있다. NPC와 플레이어의 차이가 바로 인식의 차이라면, 우리는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3. 나는 NPC가 아니라는 증거는?
3.1 의식과 자각
NPC는 자신이 NPC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NPC일지도 모른다’라고 스스로 의심할 수 있다. 자아를 인식하고 현실을 분석하는 능력 자체가 우리가 단순한 NPC와 다름을 증명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3.2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우리는 습관적으로 정해진 삶을 살지만,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만약 내일 아침, 전혀 가본 적 없는 길을 걸어가고,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해본다면? NPC처럼 행동 패턴이 정해져 있다면 이런 선택은 불가능할 것이다.
3.3 기존의 시스템을 깨는 존재
게임 속 NPC는 게임의 규칙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인간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창작하고, 혁신하고, 사회를 바꿔가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단순한 NPC가 아니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는 주인공일까, 조연일까?
우리는 때때로 삶이 반복된다고 느끼고, 우리의 행동이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단순한 NPC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인지 조연인지’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능력이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을 NPC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한 가지 새로운 선택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플레이어’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